근원: https://www.bertha-dudde.org/ko/proclamation/0933

0933 영의 학교. 이 땅의 삶은 성장을 위한 장소.

1939년 5월 27일: 책 18

모든 각각의 피조물은 영의 학교를 이수하는 법의 지배를 받는다. 피조물은 모든 성장 단계 동안 강제로 이 의무를 수행해야만 한다,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묶임에서 벗어나고, 그는 이제 이런 기회를 영의 성장을 위해 활용할 자유를 얻는다. 이 땅의 자녀는 단지 가르침을 받기를 원한다면, 그는 가장 충실하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. 그에게 언제든지 영의 힘이 제공되고, 혼의 구원을 위해 알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. 그에게 계속해서 그가 내면의 음성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경고가 주어진다. 이 모든 일은 항상 단지 저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영적으로 성숙한 상태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. 높은 곳은 이 땅의 존재에게 빛의 영역을 의미하고, 완성에 이르지 못한 존재들이 거하는 이 영역의 밖과 현저하게 구별이 된다.

인간이 자신의 영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한, 인간이 단지 순전히 이 땅에 자신의 안녕에 관해 관심을 두는 한, 혼의 상태는 항상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할 때와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다. 그러면 혼은 사망의 지점에 도달한다. 혼은 더 높은 성장을 위해 추구하지 않고, 영적인 양식이나, 영적인 지식을 구하지 않고, 그러므로 혼의 상태가 최소한이라도 변하지 않는다. 그럴지라도 이 땅의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, 날과 년들을 무의미하게 잘못 보낸다. 왜냐하면 혼은 모든 경험에 관여하지 않고, 단지 몸만이 관여하기 때문이다.

사람이 혼에게 속한 일은 파악할 수 없는 일이고, 이로써 추구할 만하게 보이지 않는다. 그러나 영이 깨어나, 성장하는 일이 이 땅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다. 왜냐하면 혼이 더 높은 지식에 도달하여, 영의 학교를 의식적으로 마치고, 그의 결과가 육체의 죽음 후에 빛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일을 보장해주는, 다시 말해, 인간으로서의 육신을 입은 목적과 목표인 온전한 상태가 되면, 이 땅의 삶이 비로소 사람에게 성장의 학교가 되기 때문이다.

아멘

번역자 마리아, 요하네스 박